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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자 권길상
ㆍ작성일 2021-01-15 (금)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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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유 신도비 2(용량부족)

 

(홈페이지 용량 부족으로 나눠서 올려드립니다.)

공의 이름은 상유(尙游), 자는 계문(季文)이다. 다른 자는 유도(有道)이니 친구들이 자주 도가 있다고 칭하니 마침내 이것으로 행세하였다. 권씨는 안동에서 나왔는데 시조 행()은 고려 태조를 도와 태사가 되었다. 조선에 들어와 보문각제학 극화(克和), 이조판서 양평공 감()은 부자가 세상에 이름이 있었다. 4세를 전하여 오수찰방 증이조판서 주()가 공의 증조부이고 조부는 선산부사 증 좌찬성 성원(聖源)이며, 부친은 사헌부집의 증영의정 격()이다. 모친은 증정경부인 함평 이씨이니 돈녕도정 초로(楚老)의 따님이다. 공은 처음에 청풍의 선영에 장사지냈다가 11년 후에 풍수가의 말을 따라 금산 두곡의 동남향 언덕에 개장하였고 부인 증정부인 원주원씨와 함께 모셨다. 원씨는 우윤 만춘(萬春)의 따님이니 공과 덕이 합치하였는데 먼저 별세하였다. 31녀를 두었는데 장남 소()는 젊어서 죽었고 차남은 전라도관찰사 혁()이고, 삼남 위()는 역시 요절하였으며 딸은 대사헌 이현록(李顯祿)에게 출가하였다. 서자 3인은 영, , 강이고 서녀 3인은 이장발(李長潑), 김성휘(金聖彙), 김현좌(金鉉佐)에게 출가하였다. 소는 계자 이성(彛性)이 있고 혁은 4녀를 두었으니 사인 민백흥(閔百興), 이현철(李顯哲), 심관지(沈觀之)에게 출가하였으며 딸 하나는 어리다. 위는 계자 약성(若性)이 있고 2녀는 사인 민백첨(閔百瞻)과 김두형(金斗衡)에게 출가했다. 이현록의 아들은 판관 권중(權中)이고 딸은 진사 심유(沈鑐)에게 출가했으니 내외손자, 증손이 모두 20여명이다.

 

 

 

()이 이미 묘를 받들어 옮겨 봉하고 여러 의전이 구비되었으나 오직 비석을 세우지 못했는데 내가 공을 가장 깊이 안다고 하여 집안에 전해오는 글을 보내어 행적을 기록하게 하여 비문을 새기려 하였다. 다만 이렇게 늙고 병들어 정신이 흐리고 기력이 없는데 어찌 아름다운 덕을 드러내 밝힐 수 있겠는가? 삼가 공의 경력과 가족의 계통을 대략 서술하고 한두 가지를 붙여 서술한다.

 

의정공은 맑은 이름과 곧은 절개로 후손에게 모범을 세우고 큰형 수암공은 도학이 당시의 사표가 되었으니 공은 항상 부사로서 섬겼다. 또 우암선생의 문하에 출입하여 가르침을 받고 영향을 받아서 능히 이룬 바가 있으니 그 대대로 쌓은 덕과 사제 간의 아름다움, 이와 같은 것을 지녔다.

 

의정공이 돌아가시자 슬픔으로 건강을 해쳐 거의 죽게 되었고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항상 마음 아프게 사모하는 정을 품어서 외가에 대해 더욱 후하게 대접하였다. 큰형님의 음식이나 의복은 때마다 계속하여 받들어서 제절의 법도에 하나도 어그러짐이 없었다. 매양 집이 멀어 계속 만날 수 없는 것을 한스럽게 여겨 중년에는 옆에 집을 짓고 관청에서 물러나오면 곧 돌아와 옆에서 모셨다. 조카나 손자들을 대하는 데 내 자식과 차이가 없으니 가난하여 집안을 다스릴 수 없으면 밭을 주어 일을 하도록 하였다. 선조를 받드는데 더욱 힘써 제학공과 양평공으로부터 외가 쪽의 선조명현에 이르기까지 모두 하나같이 묘소를 높여 세웠으니 그 마음과 행실이 독실하고 진지한 것, 이와 같은 것을 지녔다.

 

어려서부터 날마다 옛 책을 많이 읽었다. 성리설에 더욱 전일하고 정미하였으며 논어와 주역을 가장 좋아하였고 소학·근사록·심경등의 책에 대해 넓게 알아서 평상시의 행동이 경서에 근거함이 있었다. 일찍이 태극에 대해 읊기를 청컨대 밝은 달의 둥글고 둥근 그림자를 보아서 앞의 냇물과 뒤의 냇물에 나누어 도장을 찍고자 하노라.”라고 하였으니 그 평소에 습득한 바를 알 수 있다. 만년에 자질들에게 매일 세 번 반성하는 계를 만들어서 한번 생각하고 한번 일을 함에 모두 이것으로 반성하고 살펴서 마음에 새겨 고쳐야 한다고 명하였다. 또 경계하기를 겸손은 학자가 죽을 때까지 지녀야할 부적이니 너희들은 그리 알라.”라고 하였다. 그 학문하는 데에 부지런 한 것이 늙어서도 더욱 게으르지 않으니 이와 같은 것을 지녔다.

 

세상이 혼탁하면 들에서 농사짓고 세월이 깨끗하면 조정에 나아가니 나가고 들어옴이 올바르고 옛 의리에 능히 부합하였다. 몸가짐을 삼가하고 지조를 굳게 지켜 구차하지 않았다. 숙종 말년에 동료들 중 식견이 없는 사람들이 이해설을 만들다 곧 공공연히 배척하였다. 네 재상이 피해본 소식을 듣고는 식사를 물리치고 여러 자식들에게 과거에 나가지 말라고 훈계하였다. 그 춘추의 대의에 대하여는 지키는 것이 더욱 엄격하였다. 갑신년에 왕이 제단을 설치하여 신종과 의종, 두 황제를 제사지내라고 명령하자 조정의 의논이 외방의 번국에서는 마땅하지 않다는 의논이 있었는데 공이 제후국에서 왕을 제사지내는 일을 인용하여 의심을 꺾어 버렸다. 이보다 앞서 우암이 만동묘를 창건하여 두 황제를 제사지냈는데 뒤에 임금에게 보고가 되었다. 혹자는 이일은 당연히 사림에게 맡겨야 하며 조정은 관여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으나, 공은 다시 이것을 옳지 않다고 말하였으니 그 명분을 세우고 의리를 숭상하는 것, 이와 같은 것을 지녔다.

 

! 공은 깨끗하고 솔직하며 질박하고 후덕한 자질과 청렴결백하고 검약한 절개를 지니고 또 학술로 능히 왕을 보좌하였다. 명성과 품행을 갈고 다듬어 세상의 구차하고 비천한 언론 보기를 비루하게 여겨 마치 자신을 더럽힐 것처럼 여겼으니 어찌 사우중의 진정한 군자요, 조정의 어진 대부가 아니겠는가? 지금에 이르기까지 세상은 더욱 비루하게 되어가고 이익을 탐하는 마음은 하늘까지 가득하여 세상이 어지럽고 시끄러우니 다시 할 말이 없거니와 생각하니 공을 구원에서 일으켜 세상을 가르쳐 격려하고 싶지만 할 수가 없구나. 헛된 글이지만 전하여 후세에게 고하여 밝히고 우리 무리 중에 이러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도 또 하나의 일일 것이다. 마침내 명하노라

 

한사람 훌륭한 분 있으니 뜻과 기상이 세속에서 뛰어나더라.

 

집안에서 교훈을 물려받아 학문과 도덕의 진리에 심취하였네.

 

험하고 어려운 때를 만나면 가슴속의 보물을 스스로 소중히 하고

 

세상의 도가 바로 잡히면 구부린 몸을 곧 펴서 나왔네.

 

영예로운 길에서 머뭇거리니 오직 의리만 따름이라네.

 

남도의 백성 어루만지니 교화가 행해짐이 따뜻한 봄과 같네.

 

여러 차례 발탁되니 명망이 많은 벼슬아치들을 내려다보았네.

 

호조를 맡아 빈민을 구제하고 재정을 다스림이 공평하였고

 

이조에서 인사를 맡으니 정성스럽게 인재를 선발하였네.

 

자기 몸을 잊고 마음과 힘을 다하니 나라의 충성스러운 신하일세.

 

공은 최고로 곧고 순수하여 척추에 단단히 붙어있는 것과 같아

 

부정을 배척하고 인을 부호하며 끝내 물들여도 검어지지 않고 갈아도 얇아지지 않았네.

 

송나라 미치광이가 입을 놀림에 주자가 꺾어 버리더니 가까운 곳에서 혼란은 한손으로 막아버렸네.

 

황제의 제사를 힘써 도와 오나라 부차가 섶에서 잤던 의리를 힘써 쫓았네.

 

세상이 어지러워 진 기사년(황파=기사년: 송시열이 유배됨)부터 정축, 무인년까지

 

의리는 가을하늘처럼 늠름하였으나 근심으로 고통스러웠네.

 

비록 영원히 묻혀 닫혔지만 그 정신은 가려지지 않네.

 

! 지금에 이르러 세상은 더욱 가라앉고

 

이욕과 유혹으로 가득 차 여러 사람이 모두 눈을 찌푸리는구나.

 

공도 세월을 돌려 본다면 또한 응당 눈살을 찡그릴 것이다.

 

내가 글에 거듭 말하며 아울러 어리석게도 풍자하여

 

비석에 새기니 영원토록 끝이 없이 볼지어다.

 

숭정기원후 두 번째 신유년(영조 17, 1741)에 세움.

 

바름으로 사람을 감복시키는 것을 이라 하고

 

지혜로운 자질로 이치를 지닌 것을 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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