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公)의 휘(諱)는 행(幸)이며 본성은 신라 종성(宗姓)인 김씨(金氏)였다. 신라 말엽에 김선평(金宣平:安東金氏始祖), 장정필(張貞弼:安東張氏始祖)와 함께 고창군(古昌郡:安東)을 지키고 있었는데, 후백제 견훤이 신라를 침범하여 왕을 죽이고 왕비를 욕보였다. 이에 고려 태조 왕건(王建)이 변란을 듣고 안동의 북쪽에 있는 병산(甁山)에서 주둔하여 견훤과 대치하고 있었다.

 

태사공이 두 사람과 상의하기를, "무도한 견훤과는 함께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 수 없는데, 우리는 병력이 적어 치욕을 갚을 힘이 없다. 지금 전쟁터가 되었으니 가만있으면 마침내 섬멸을 당할 것이다. 어찌 왕공에게 귀순하여 위로는 임금의 치욕을 갚고 아래로는 백성의 목숨을 보존하지 않겠는가." 하고, 전군(全郡)의 백성을 거느리고 고려 태조에게 귀순하여 병산 대첩을 세웠다.

 

고려 태조가 크게 기뻐하며, "행(幸)은 기미(幾微)에 밝아 귀순을 하였으니 권도(權道)를 안다." 하였다. 이에 성(姓)을 권씨로 하사하였고 태상(太相)에 제수하고 군을 승격하여 안동부(安東府)로 삼고 식읍(食邑)에 봉하였다. 벼슬은 삼한벽상 삼중대광 아부공신 태사(三韓壁上 三重大匡 亞父功臣 太師)에 이르렀다.

 

공이 돌아가니, 안동부의 서쪽의 천둥산 봉정사(鳳停寺) 뒤에 있는 조화곡(造化谷)에 장례하였으니, 지금의 안동시(安東市) 서후면(西後面) 성곡리(城谷里) 능동(陵洞)이 바로 이곳이다.

 

태사공의 신도비(神道碑)가 예전에는 없었는데 선산부사공(善山府使公) 휘(諱) 성원(聖源:시조로부터 24세손)께서 영천군수로 부임하면서 대사(大事)를 시작하여 선산부사로 있을 때 건립하였고, 묘비(墓碑)는 이조판서(吏曹判書) 정간공(靖簡公) 휘(諱) 혁(爀:시조로부터 27세손)께서 석봉(石峰) 한호(韓濩)의 글씨를 집자(集字)하여 건립하였으니, 시조 태사공의 석물(石物)은 모두 우리 집안 선조들이 세운 것이다.

 

시조 태사공 휘 행(幸) 묘소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성곡리 능동

 

태사공 묘비
정간공 혁(爀) 개건

 

태사공 능동재사
태사공묘아래

 

태사묘우
경상북도 안동시 북문동

 

숭보당(崇報堂)
태사묘 경내

 

보물각(寶物閣)
태사묘 경내

 

능동 구(舊) 신도비각(문화재자료 제63호)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성곡리 393번지

 

태사묘 권태사공 묘정비
경상북도 안동시 북문동 24번지